수능 당일 아침, 한 번 더 보세요.
1.
어느 날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옆집 형이 여러분을 붙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수학 1번 문제 풀 때 진짜 조심해야 해. 나는 그 문제 때문에 대학에 떨어져서 내 꿈을 못 이뤘어.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해.
만약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3월에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겁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어떻게 1번을 틀리지?
그런데, 수능 당일 아침에 수능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옆집 형이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어떨까요?
수학 1번 문제 풀 때 진짜 조심해야 해. 나는 그 문제 때문에 대학에 떨어져서 내 꿈을 못 이뤘어.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해.
뭔가 찝찝할 겁니다. 어쩌면 오싹하고, 공포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기분을 느꼈든지 수능 시험장에서 수학 1번 문제를 풀 때 분명 평소보다 더 조심하게 되겠죠.
2.
간단한 수학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한 학생이 수능 다섯 과목에서 총 7문제를 틀렸습니다.
이 학생은 네 과목에서 총 3문제를 틀렸습니다.
남은 한 과목에서 이 학생이 틀린 문제의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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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센스가 아닙니다. 정답은 4문제입니다.
정리해 보면, 수능 다섯 과목에서 총 7문제를 틀린 학생이 있는데, 한 과목에서 절반이 넘는 오답이 발생한 것이죠. 그 한 과목이 미친 듯이 어렵게 출제된 것일까요?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어렵게 나왔으니 이 학생이 그 과목에서 4문제를 틀린 건 당연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4문제 중 2문제는 절대 틀려서는 안 되는 문제였습니다. 그중에 한 문제는 더더욱 말이죠.
화학 1번: 정답률 94%
저는 두 번째 수능에서 화학 1번 문제를 틀렸습니다. 네, 제가 퀴즈의 등장한 그 학생입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바로 여러분에게 옆집 형입니다. 운이 좋은 옆집 형이요. 1번을 틀렸는데 왜 운이 좋은 건지는 조금 뒤에 알게 되실 겁니다.
웃긴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두 번째 수능을 마친 후 학원으로 돌아왔을 때 같은 반 친구가 수학 2점 문제를 틀렸다며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해 줬습니다. 지는 화학 1번, 6번을 틀린 줄도 모른 채로 말이죠. (채점이나 할 것이지..)
3.
서울대를 가기 위해 상위 1%를 지향했던 저는, 수능날 정답률 94% 문제를 틀리며 하위 6%에 속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운 경험이 있는 제가 여러분에게 실수에 대한 조언을 한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실수에 대한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운이 좋은 옆집 형으로서 말이죠.
다행히도 그해 화학 1은 전체 응시자 10만 명 중에 단 76명만이 만점을 받은, 불을 넘어 용암에 가까운 난이도였습니다. 만점자 비율이 0.076%에 불과한 시험이었기에 이런 뼈아픈 실수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다른 과목들도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어렵게 출제되었기에, 다른 네 과목에서 총 3문제를 틀려 결과적으로는 상위 1% 내에 들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죠.
4.
저는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는 동안 항상, 모든 과목이 전부 어렵게 나오는 수능을 가정하고 대비했습니다. 수능 난이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이니 나에게 불리하게 설정한 것이죠. 그렇기에 실제로 수능이 전반적으로 어렵게 출제된 것은 저에게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혹시, 현재 내가 약한 과목이 수능에서 쉽게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있나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을 경계하십시오. 실제 시험이 쉽게 나온다면 그 반가운 마음에 실수하기 쉬우니까요. 그리고 쉽게 나온다고 해서 나만 쉬운 시험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쉽다고 느껴질 때 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수능 당일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초연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게 말이죠.
AMATDA
우물쭈물 대지 말고, 자신있게 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