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레터 (90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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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훈이형의 첫 번째 편지

재수 말리고 싶은 학생 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남깁니다.
두 가지 질문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고 재수를 시작한다고 하면 재수를 말리고 싶다. 답을 내야 하는 고민이 아니고, 정답이 있는 고민도 아니다. 또한 고민하지 않는다고 해서 재수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저주의 말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에 죽도록 열심히 했음에도 실패한다면 깔끔하게 승복할 수 있을까?
'깔끔하게 승복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멘탈이 강한 사람은 이런 고민 없이 잘 버텨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유는 이렇다
+1수는 관성과 같다. 제동 장치가 없다면 멈추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내가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실패했을 때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보지 않으면, 점점 내 삶은 수능의 성패에 따라 송두리째 바뀌는 삶이 되어버린다. 우리 나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아직까지는 수능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수능'만'이 내 존재를 규정 짓는 요소가 되어버리는 것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게 무서운 일이다.
장수생
나는 장수생들과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누는 편인데, 장수생이 오히려 더 멘탈이 약한 경우를 많이 봤다. 실전 경험이 많은데 왜 그럴까? 물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이제는 수능에서 성공한 삶 이외에는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압박감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장수생은 아니었지만, 매번 치는 모의고사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내 삶의 희비가 교차되는 상상을 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배수의 진
배수의 진 같은 그럴듯한 소리는 잠시 넣어두는 게 어떨까. 진정으로 간절하고 이 길밖에 없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위의 물음보다 더 심도 있는 고민을 스스로 해본 사람들이고, 이미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제야 할 수 있는 말이 '배수의 진'이다.
변명
그런 고민도 없이 내뱉는 '이번 연도에 정말 제 인생을 걸어 보려구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예요!'라는 말은, 그냥 당장에 복잡한 고민을 하기 싫은 자의 변명이 아닐까. 다시 되돌아보기 싫은 과거를 재빨리 청산해버리고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낙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분명 성장의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유튜브와 알람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밤낮으로 이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밤에는 '이 영상까지만 보고 자야지!'를 몇 번이나 다짐하고, 아침에는 '5분만 더..'를 몇 번이고 외친다.

재수 말리고 싶은 학생 ②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남깁니다.
내가 올 한해 수능을 준비하면서, 시험을 치기 전에 포기하게 되진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 미리 고민해보지 않는 학생들은 수능이 다가오는 마지막 시기에 멘탈 관리에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스스로 자신의 멘탈을 파괴해버리게 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제일 위험하다.
그래서 도움을 건네고 싶다.
위선적 철학자
해마다 많은 학생들이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자신이 마주한 현실과 관련한 온갖 잡생각을 한다. 두려움이 엄습해오면 갑자기 인생, 행복, 꿈에 대해 고찰하는 '철학자'가 된다. 이 악물고 끝까지 달려도 모자랄 시간에 철학자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매년 이런 학생들에게 연락이 온다. 올해도 연락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아무 고민 없이 덤볐다가 힘든 순간이 되어서야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독을 품은 꽃을 자신의 정신의 텃밭에 옮겨 심게 된다. 이 꽃을 자기합리'화'라고 한다. 스스로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의 주체는 자신이기 때문에 이미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자신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안을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스스로와 타인을 납득시킬만한 그럴듯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자기객관화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고민하기 때문에 남들이 봤을 때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그리고 보통 그 결과는 실체가 없는 모호한 단어로 표현된다.
독1: 행복
수능이 두 달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자신은 이런 불행한 무한 경쟁의 현실에서 벗어나 진정한 꿈과 행복을 찾아 떠난다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까? 그 진정한 꿈을 찾는 과정에는 고독과 좌절, 압박감 그리고 경쟁이 존재하지 않을까? 자위질은 그만두고 두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우선 자신이 준비해온 것을 마무리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설령 실패하더라도 말이다. 경쟁과 실패는 불행이 아니다. 과정이다. 성공도 그러하다.
독2: 꿈
수능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자신이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꿈이 생겼고, 올해는 당연히 의대에 합격할 가능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벌써부터 내년에 재수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겠다는 것이 정말 합리적일까? 목표는 더 높아졌는데, 당장의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설렁설렁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 정말 합리적인 행동일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행동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 행동이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워질 것이다. 아, 차라리 깨달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이 그런 행동마저 합리화해버리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해독제
1년에 딱 한 번 기회가 있고, 한 번 실패하면 내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미리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내 진정한 꿈과 행복이 무엇이고 목표가 무엇일지, 중간에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진 않을지, 그때는 또 어떻게 대처할지를 말이다. 그런 고민 끝에 절대로 다른 여타 이유로 이번 년도 수능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한 후에 재수를 시작하는 게 어떨까? 아직 덜 힘들어서 조금이나마 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 말이다.

 도움을 줄 수 없는 학생

상위권들은 스스로가 잘 나서 성장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 경우도 더러 있지만, 온전히 ‘독학’으로 상위권, 최상위권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위권들은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알기에 남들에게 도움을 잘 받는다.
이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움을 줄 수 없는’이라고 표현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써보면 무시무시한 표현이 된다.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
이 학생들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기에 도움을 받을 수많은 기회를 놓친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답답함을 느끼다 포기해버릴 확률이 높다. 혹시 여러분이 이런 학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여러분이 학습하는 강의, 교재, 칼럼 모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컨텐츠들이다. 그런데 정작 여러분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학생이라면, 이러한 컨텐츠들이 여러분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두가 비슷한 컨텐츠로 학습할 수 있게 된 시대이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